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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미학 - 이기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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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기춘 작성일08-10-15 11:16 조회2,4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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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인가 우리 인간은 기다림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녀가 만나서 운우의 정을 나누게 되면서부터 우리 인간의 역사는 시작이 된다.
 난자를 만나기 위해 일억에 가까운 정자는 서로 피튀기는 경쟁을 하면서 단 한 마리밖에 없는 난자와 만나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이윽고 그 중의 하나가 난자와 만나서 랑데부가 이루어지는 순간... 모체의 자궁에 애써 자리를 잡은 태아는 이윽고 태어나기 위해서 이 세상에 나가기 위해서 모체로부터 영양분을 섭취하면서 기다린다. 이후 우리 인간의 역사는 기다립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기다림을 만나게 된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빠가 집으로 돌아와 같이 놀아주기를 기다리는 것부터 시작해 소풍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하는 것이다. 초등학생이 되면 중학생이 되기를 기다리고, 중학생이 되면 고등학생이 될 때를 기다리고,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기를 기다린다. 

 졸업을 하고 나서는 군대를 간 그는 고참이 되기만을 기다리면서 한 편으로는 거꾸로 매달려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면 제대하기만을 기다린다. 어느새 사회의 초년병이 된 그는 승진이 되기만을 기다린다. 과장은 부장이 되기를 기다리고 끝내는 사장이 되기를 기다린다. 
 
 연애를 하기 시작한 그는 그녀와의 만남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만나면 헤어짐을 기다리고, 헤어지면 또 만남을... 그런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이 거듭된다. 어느덧 사랑에 빠져든 그는 그녀와 손잡을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어깨를 안을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포옹을 하는 날을 기다리며, 결혼을 하게 되기를 또 기다린다.

 결혼식 하는 날을 기다리며, 신혼 때는 꿈같은 세월을 보내면서 아기를 갖게 되기를 기다리며, 아기를 낳으면 언제 그 아기가 클 것인지 빨리 자라기를 기다리며, 자신이 늙기를 기다리지는 않으나 늙어가면서도 자신만은 더 행복해지기를 기다리는 인간은 과연 기다림으로 살다가 기다림으로 생을 마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이제 죽기만을 기다리는 인간의 영혼은 죽으면 또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기를 기다리면서 영원히 살아간다. 그런 우리 인간이 기다림에 익숙해지기만 한다면, 그래서 우리네 삶이 기다림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그 기다림에 우리네 삶의 행복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만 한다면, 이 세상은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는 생각도 하게 될 텐데...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지만, 자신이 살아오면서 이룬 업적에 대해서 그 결과를 기다리며 사는 삶은 그래서 행복하다.

 오늘은 어제가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내일은 또한 오늘이 있기에 기다려지는 것이다. 그런 내일을 음미하면서 기다릴 수 있는 삶. 삶을 장밋빛으로만 채색을 할 수는 없겠지만, 기다림에 익숙해지면 우리네 삶이 그렇게 비루하고 힘들게 느껴지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어렵게 돌아가는 도시의 매카니즘 속에서 잠시 벗어나, 우주와 자연의 매카니즘에 인간의 심신을 내던져 보면서 내일을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도 자아를 성숙시키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총동문회보 창간호를 발간하는 시점. 명서가 되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 
 盡人事待天命의 심정으로 기다려 본다. 

                                                                                         
                                                                           - 동문회보 창간호 편집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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