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와 미국 여행을 하고 모정규(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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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기춘 작성일10-01-03 14:15 조회2,599회 댓글0건본문
2009년 5월 8일 인천 공항을 출발
동경 나리타 공항을 경유(3시간 30분대기)후 14시간 비행으로 시카고 도착 공항대기 7시간 후에 다시 10.5시간 비행후 브라질 샹파울루에 도착, 비행시간만 총 35시간, 직항도 25시간 이상인데 가격은 거의 배 이상이나 된다.
샹파울루에서 리우데자네이로 2시간거리를 비행여행, 3대 미항과 7대 불가사의에 속하는 예수동상--- 해수욕장의 크기가 해운대 20~30배 될 정도로 크며, 빈부의 차가 엄청나게 큰 것과 일자리 문제와 빈곤한 자나 부랑자들에 의한 치안이 정말 문제일 것 같았다.
리우에서 돌아와 다시 세계 최대로 크다고 하는 이과수폭포와 수력발전소를 보기 위해 2시간 비행거리인 아르헨티나와 파라과이 여행을 했다.
쏟아져 내리는 물의 양과 규모가 엄청나게 크며 가히 악마의 목구멍이란 악명에 손색이 없을 정도라 생각이 되었으며, 그런 곳의 수력발전소는 거의 2~3천만 명이 혜택을 본다고 하니 자연자원과 먹거리, 또한 비경은 천혜의 축복을 받은 곳이라는 느낌을 받으며 현란한 카니발과 탱고, 바쁠 것 없고 먹을것이 풍부함은 부러움을 느끼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민들의 나태와 무지, 또한 물도 사서 마셔야 하는 등 관광객들에 대한 저 차원의 서비스와 녹색만의 변화없음은 별 다른 느낌을 받지 못했다.
인구가 800만 명이라는 파라과이는 농사와 마약, 도박 등으로 국민소득이 남미에서 제일 낙후되어 있었다. 공업과 병행을 해야만 소득이 나아지지 않았겠는가 하고 잠시 생각해 보았다. 예전에는 브라질보다 더 부자였고. 현재도 국민소득이 더 높고 문화 면에서 브라질을 우습게 보는 아르헨티나는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는 나라로 남미의 최남단으로 우리나라와 같이 천혜의 사계절이 있어서 친근감이 있었다.
또한 브라질의 과일과 아르헨티나의 밀과 마늘을 서로 물물교환한다니 서로 돕고 살도록 고루 혜택을 준 것은 아닌지..
포르투칼어를 사용하는 브라질은 핵무기와 항공기를 생산하고 물산이 풍부하여 미국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고 한다. 핵무기 보유했다고 하는 위력이 이 정도인줄 몰랐으며, 북한이 핵 보유에 고집을 하는 이유가 어렴풋이나마 이해가 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브라질 동부 대서양의 해변은 노후에 휴양처로서 최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쾌적하다.
그러나 중산층 정도로 살려면 한달에 500만원은 족히 있어야 생활을 할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특히 물가와 서비스환경 그리고 변화무쌍한 활력에 있어서 우리나라가 참 살기 좋은 나라라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복지관도 브라질에서 두 곳, 미국에서 교회와 복지관을 방문한 바 있으나, 노후엔 일정 수입만 보장되면 역시 귀국해서 생활하고 싶다는 동포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서초동 천주교 브라질 봉헤지로 복지관은 하루 100명에게 무료급식과 무연고 노인 5명 보호 중)
땅이 넓고 매장량이 풍부한 곳을 우리나라 기업인 삼성, 엘지, 현대는 열심히 투자하고 홍보함에 감명을 받았으며, 상대를 알아야 대처방안이 나오듯이 글로벌화의 길만이 우리가 잘살 수 있는 첩경임을 깨닫게 하는 여행이었다.
남미의 가톨릭 계통의 풍습은 옛 농장을 경영하기 위한 아프리카 노예제도 도입을 연상하는듯한 모방으로 직원들과의 화장실도 따로, 아파트 엘리베이터도 따로 사용, 먹거리도 별도로 마련해주고 40~50만원 정도의 급료로 15년 동안근속을 하도록 하고 있다고...
김치, 아욱 된장찌게를 아주 잘 끓여 주었다. 게다가 샤워화장실이 6개나 되고 개인 엘리베이터가 있다니, 이곳에서의 우리나라 사람들의 근면성과 교육열은 과연 자랑할만 했다.
다시 11시간 비행 후 시카고에 도착, 디트로이트에서 4시간 이상 운전하고 마중 나온 장조카 내외, 유학 후 트로이에서 지엠 계열회사에서 근무하다 몇 개월 휴직 중에 있다.
안식일 날 교회의 재정을 맡아 보는 장로 및 가족이 운영하는 이마트 정도급에 슈퍼마켓 일을 보충수행 중으로 이곳에선 그런대로 잘 나가는 축인것 같은데, 이는 성실과 정직과 신용으로 인한 평소의 그들의 생활관이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대형 링컨 승용차가 5대에... 캐터링 업무에 있어서 가격무시 최고 상품공급, 손이 갈만한 상품이면 3~4배는 보통인 가격구성이었다. 집 앞 마당까지 새와 토끼와 사슴이 새끼를 데리고 놀러 나오는 맑은 자연환경, 이곳 역시 빈부의 차가 크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살기 좋은 곳이라는 느낌은 많이 받았다.
흑인들에 의해 한국의 명동거리 같은 곳은 공동화 현상을 느끼게 했다...
조카 왈, 꿈도 미래도 없이 오늘만을 생각하고 일신의 안락만을 생각하는, 죽는 모습을 보기위해 살인하는 흑인들을 볼 때, 한 편의 미국인들은 정말 인정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트로이에서 4시간을 달려 나이아가라폭포를 구경하고, 또 한 시간을 달려 캐나다 토론토시에 사는 사돈을 방문하였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이과수 폭포와는 달리 세련미와 주변의 환경과의 조화에 있어서 가히 최고의 관광지로 손색이 없음을 새삼 느꼈다. 미국과 캐나다의 보물임에 틀림이 없어 보였다.
관망대 중앙매점에서 우리나라 제품인 튀김라면과 김치라면을 보고는 반가움을 느끼게도 한 우리 브랜드의 상품..어느새 이곳까지 진출을 했구나!
토론토 시내는 우리나라 어느 도시마냥 한국간판(노래방, 부동산, 머리방, 한약방, 음식점, 여행사 등)이 즐비하여 국내의 지방도시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하였다.
매일 밤 조카들 친구 파티에 초청(고굿에서 친지방문 시 의례적으로 그런다고 함)되어 별난 기름진 음식과 양주와 토속주로 위장에 탈이 날 지경이었으나 쌈밥을 잘 먹고 국경 넘어 트로이로 복귀했다.
이렇게 한국사람이 많은 곳에선 어학연수에 지장이 많아 보였다. 타국에서 외롭다 보니 유학생 끼리끼리 놀며 타락과 탕진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여성이 한국 남성에게 시집을 잘 오지 않음은 유머(언어적. 사고적. 행독적인)가 없고, 미식축구를 해도 남자와 똑같이 유니폼을 입고 운동장에 나오는 것을 한국남성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등 그러한 이유라고도 하나, 글쎄?
시카고와 디트로이트는 오대호(호수 1개가 우리나라 2~3배 크기)에 인접하여, 공업도시로 지엠 본사와 유나이티드항공 본사가 위치하여 주변의 아름다운 건물은 거의가 계열 부품공장으로 농장은 볼 수가 없었다.
다시 트로이에서 시카고, 일본 나리타로 13시간 비행, 2시간20분대기 후 2시간 20분 걸려 인천에 도착을 했다. 공항과 기내 서비스는 우리나라가 최고임을 다시 한 번 느낄수 있었다. 일본 사람들 마스크는 미국에서부터 줄기차게 쓰고 다녀 유행성독감에 대한 우려도 있어 그렇기도 했지만, 우리 마늘과 김치냄새의 위력이 대단해서 그랬던 것은 아닌지...
결론적으로 일찍 외국으로 (브라질에 한국인 6만, 일본인 50만, 중국인 100만이라고 한다) 뛰어들어 이제는 50대의 나이로 접어든 조카들을 위시한 여러 사람들이 고생도 많이 했겠지만, 선각자로서 해외에서 우리 한국인의 의지를 일깨운자들로 부러움을 느끼기도 하였다.
현재: 2회 회장, 재항군인회 안산시 지부 이사
동경 나리타 공항을 경유(3시간 30분대기)후 14시간 비행으로 시카고 도착 공항대기 7시간 후에 다시 10.5시간 비행후 브라질 샹파울루에 도착, 비행시간만 총 35시간, 직항도 25시간 이상인데 가격은 거의 배 이상이나 된다.
샹파울루에서 리우데자네이로 2시간거리를 비행여행, 3대 미항과 7대 불가사의에 속하는 예수동상--- 해수욕장의 크기가 해운대 20~30배 될 정도로 크며, 빈부의 차가 엄청나게 큰 것과 일자리 문제와 빈곤한 자나 부랑자들에 의한 치안이 정말 문제일 것 같았다.
리우에서 돌아와 다시 세계 최대로 크다고 하는 이과수폭포와 수력발전소를 보기 위해 2시간 비행거리인 아르헨티나와 파라과이 여행을 했다.
쏟아져 내리는 물의 양과 규모가 엄청나게 크며 가히 악마의 목구멍이란 악명에 손색이 없을 정도라 생각이 되었으며, 그런 곳의 수력발전소는 거의 2~3천만 명이 혜택을 본다고 하니 자연자원과 먹거리, 또한 비경은 천혜의 축복을 받은 곳이라는 느낌을 받으며 현란한 카니발과 탱고, 바쁠 것 없고 먹을것이 풍부함은 부러움을 느끼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민들의 나태와 무지, 또한 물도 사서 마셔야 하는 등 관광객들에 대한 저 차원의 서비스와 녹색만의 변화없음은 별 다른 느낌을 받지 못했다.
인구가 800만 명이라는 파라과이는 농사와 마약, 도박 등으로 국민소득이 남미에서 제일 낙후되어 있었다. 공업과 병행을 해야만 소득이 나아지지 않았겠는가 하고 잠시 생각해 보았다. 예전에는 브라질보다 더 부자였고. 현재도 국민소득이 더 높고 문화 면에서 브라질을 우습게 보는 아르헨티나는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는 나라로 남미의 최남단으로 우리나라와 같이 천혜의 사계절이 있어서 친근감이 있었다.
또한 브라질의 과일과 아르헨티나의 밀과 마늘을 서로 물물교환한다니 서로 돕고 살도록 고루 혜택을 준 것은 아닌지..
포르투칼어를 사용하는 브라질은 핵무기와 항공기를 생산하고 물산이 풍부하여 미국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고 한다. 핵무기 보유했다고 하는 위력이 이 정도인줄 몰랐으며, 북한이 핵 보유에 고집을 하는 이유가 어렴풋이나마 이해가 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브라질 동부 대서양의 해변은 노후에 휴양처로서 최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쾌적하다.
그러나 중산층 정도로 살려면 한달에 500만원은 족히 있어야 생활을 할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특히 물가와 서비스환경 그리고 변화무쌍한 활력에 있어서 우리나라가 참 살기 좋은 나라라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복지관도 브라질에서 두 곳, 미국에서 교회와 복지관을 방문한 바 있으나, 노후엔 일정 수입만 보장되면 역시 귀국해서 생활하고 싶다는 동포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서초동 천주교 브라질 봉헤지로 복지관은 하루 100명에게 무료급식과 무연고 노인 5명 보호 중)
땅이 넓고 매장량이 풍부한 곳을 우리나라 기업인 삼성, 엘지, 현대는 열심히 투자하고 홍보함에 감명을 받았으며, 상대를 알아야 대처방안이 나오듯이 글로벌화의 길만이 우리가 잘살 수 있는 첩경임을 깨닫게 하는 여행이었다.
남미의 가톨릭 계통의 풍습은 옛 농장을 경영하기 위한 아프리카 노예제도 도입을 연상하는듯한 모방으로 직원들과의 화장실도 따로, 아파트 엘리베이터도 따로 사용, 먹거리도 별도로 마련해주고 40~50만원 정도의 급료로 15년 동안근속을 하도록 하고 있다고...
김치, 아욱 된장찌게를 아주 잘 끓여 주었다. 게다가 샤워화장실이 6개나 되고 개인 엘리베이터가 있다니, 이곳에서의 우리나라 사람들의 근면성과 교육열은 과연 자랑할만 했다.
다시 11시간 비행 후 시카고에 도착, 디트로이트에서 4시간 이상 운전하고 마중 나온 장조카 내외, 유학 후 트로이에서 지엠 계열회사에서 근무하다 몇 개월 휴직 중에 있다.
안식일 날 교회의 재정을 맡아 보는 장로 및 가족이 운영하는 이마트 정도급에 슈퍼마켓 일을 보충수행 중으로 이곳에선 그런대로 잘 나가는 축인것 같은데, 이는 성실과 정직과 신용으로 인한 평소의 그들의 생활관이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대형 링컨 승용차가 5대에... 캐터링 업무에 있어서 가격무시 최고 상품공급, 손이 갈만한 상품이면 3~4배는 보통인 가격구성이었다. 집 앞 마당까지 새와 토끼와 사슴이 새끼를 데리고 놀러 나오는 맑은 자연환경, 이곳 역시 빈부의 차가 크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살기 좋은 곳이라는 느낌은 많이 받았다.
흑인들에 의해 한국의 명동거리 같은 곳은 공동화 현상을 느끼게 했다...
조카 왈, 꿈도 미래도 없이 오늘만을 생각하고 일신의 안락만을 생각하는, 죽는 모습을 보기위해 살인하는 흑인들을 볼 때, 한 편의 미국인들은 정말 인정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트로이에서 4시간을 달려 나이아가라폭포를 구경하고, 또 한 시간을 달려 캐나다 토론토시에 사는 사돈을 방문하였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이과수 폭포와는 달리 세련미와 주변의 환경과의 조화에 있어서 가히 최고의 관광지로 손색이 없음을 새삼 느꼈다. 미국과 캐나다의 보물임에 틀림이 없어 보였다.
관망대 중앙매점에서 우리나라 제품인 튀김라면과 김치라면을 보고는 반가움을 느끼게도 한 우리 브랜드의 상품..어느새 이곳까지 진출을 했구나!
토론토 시내는 우리나라 어느 도시마냥 한국간판(노래방, 부동산, 머리방, 한약방, 음식점, 여행사 등)이 즐비하여 국내의 지방도시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하였다.
매일 밤 조카들 친구 파티에 초청(고굿에서 친지방문 시 의례적으로 그런다고 함)되어 별난 기름진 음식과 양주와 토속주로 위장에 탈이 날 지경이었으나 쌈밥을 잘 먹고 국경 넘어 트로이로 복귀했다.
이렇게 한국사람이 많은 곳에선 어학연수에 지장이 많아 보였다. 타국에서 외롭다 보니 유학생 끼리끼리 놀며 타락과 탕진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여성이 한국 남성에게 시집을 잘 오지 않음은 유머(언어적. 사고적. 행독적인)가 없고, 미식축구를 해도 남자와 똑같이 유니폼을 입고 운동장에 나오는 것을 한국남성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등 그러한 이유라고도 하나, 글쎄?
시카고와 디트로이트는 오대호(호수 1개가 우리나라 2~3배 크기)에 인접하여, 공업도시로 지엠 본사와 유나이티드항공 본사가 위치하여 주변의 아름다운 건물은 거의가 계열 부품공장으로 농장은 볼 수가 없었다.
다시 트로이에서 시카고, 일본 나리타로 13시간 비행, 2시간20분대기 후 2시간 20분 걸려 인천에 도착을 했다. 공항과 기내 서비스는 우리나라가 최고임을 다시 한 번 느낄수 있었다. 일본 사람들 마스크는 미국에서부터 줄기차게 쓰고 다녀 유행성독감에 대한 우려도 있어 그렇기도 했지만, 우리 마늘과 김치냄새의 위력이 대단해서 그랬던 것은 아닌지...
결론적으로 일찍 외국으로 (브라질에 한국인 6만, 일본인 50만, 중국인 100만이라고 한다) 뛰어들어 이제는 50대의 나이로 접어든 조카들을 위시한 여러 사람들이 고생도 많이 했겠지만, 선각자로서 해외에서 우리 한국인의 의지를 일깨운자들로 부러움을 느끼기도 하였다.
현재: 2회 회장, 재항군인회 안산시 지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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