亡婦歌 고문 - 신태우(1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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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기춘 작성일10-01-03 13:38 조회2,665회 댓글0건본문
여보 어쩌면 이렇게 허무하게 갈 수가 있소.
그날 처치실 안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오. 침대 위에 반듯하게 누워있는 당신의 얼굴은 너무나 많이 부어있고, 피투성이가 되어 인공호흡기가 물려져 있고 폐에 지혈이 안되어 고이는 피를 빼내느라 의사들가 간호사들은 연신 펌프질을 하고, 피를 수혈하느라 생리 식염수와 혈장 혈액은 어지럽게 뽈대에 걸쳐 있고, 사방으로 튄 피는 침대 주위를 온통 붉게 물들이고, 나는 곧 쓰러질 것 같은 몸을 침대를 잡고 간신히 서 있고 아들과 두 딸과 사위는 각오한 듯 엄마만 부르며 울부짗는데, 드디어 의사가 사망선고를 한다. '이제 최용순씨는 2009년 4월 9일 21시 41분 급성 백혈병으로 운명하셨습니다.'
향년 나이 60세, 환갑을 불과 6개월 앞두고...
언제나 나보다 건강하고 오래 살 거라며 수영이며 등산, 운동도 열심이었고, 건강검진도 해마다 빼놓지 않고 열심이었던 당신, 무엇보다 지난 3월 12일 건강검진에 아무 이상이 없었던 당신...
애들 모두 출가시키고 혼자 있으면 괜히 우울증이라도 걸릴까봐 봉사활동이며 각종모임으로 늘 하루가 바쁘던 당신이 이렇게 허무하게 가다니. 아까 12시에 점심식사도 꽤 많이 했던데...
막내딸이 해산을 하고 몸조리한다고 친정에 온지 단 하루, 발병한지 8일 병명도 모르고 입원한지 5일만에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란 희귀병으로 당신 친정 어머니 제삿날에
가다니,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이참담한 마음 무엇으로 표현하리오.
집안 선영은 있으나 지난 해부터 의정부 송산 지구 택지개발로 수용되면서 쓸 수가 없게 되었고, 처 고향 원주에 처 큰집으로 무상 양도해준 산이 있으나, 거리도 멀고
애들이 쉽게 찾아갈수 있는 곳이 아니라 망설여지고, 학교 후배친구가 양평에서 공원묘지를 운영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일단 내일 오전 중에 알아보기로 작정하였다.
영안실 사무실에선 우선 급한 대로 화장을 전재로 벽제, 성남 승화장을 알아보니 예약이 마감되었고 수원에 예약이 가능해서 수원으로 예약을 해놓았다.
아직은 젊은 60대초반이라 영정사진은 생각도 못 했는데 당장 영정사진도 확대해야 하고 영안실, 장지, 발인시간조차 결정된 것이 아무 것도 없으니...
시간도 어느새 밤 12시가 되어가고 이 늦은 시간에 일가친척 지인들에게 알릴수도 없고, 할 일은 많은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내 처지가 너무나 처량하다. 그래도 처갓집 형제들에게는 알려야 되겠다 싶어 사촌처남과 사촌언니, 사촌올케에게는 알렸다.
수화기 저쪽에서 통곡소리가 들려온다.
사망 2일째 새벽같이 큰딸을 깨워 안식구의 영정사진을 챙겨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일찍 가야할 일도 없으면서 아침 8시가 좀 넘어 이리저리 수소문하여 양평에서 납골당을 운영하는 후배친구와 통화가 되어 공원묘지를 알아주도록 부탁하였다.
요즈음 추세가 납골묘가 대세이나 사실 나나 자식들은 화장을 반대하여 매장을 원하였던 것이다. 8시 반이 조금 넘어 후배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양수리에 갑산공원 묘원이 있다며 직원이 출근길에 식장에 들러 나를 안내해 가겠다
한다. 양수리라면 우리집에서 1시간도 걸리지 않고 풍광이 수려한 북한강변으로
안식구와 자주 드라이브한 곳이라 우선 마음에 들었다.
내가 풍수를 배운 바도 없고 들은 바도 없지만, 그래도 35년간 살을 맞대고 산 내 사랑하는 안식구가 영면할 장소이니, 혹여 물은 나지 않을지, 방향은 어떤지 내가 직접 확인하여야겠다. 오전 11시가 다 되어 도착한 안내원을 따라 사위를 앞세우고 묘지에 도착하여 보니 너무도 경사가 가파르고 생각 보다는 달리 첩첩산중이라 조금은 실망스러웠지만, 지금 이 시각에 어디에 정할수 있나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래도 전망이 좋은 묘지 8부능선 양지바른 곳으로 정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오후 2시가 넘어서야 겨우 빈소도 차려지고 조문객을 맞을 준비가 완료되었다.
그러나 아직 염습이 끝나지 않았다. 원래 오전10시로 예정되었으나 묘지가 정해지지 않아 일이 이렇게 되었다. 화장이냐 매장이냐에 따라 쓰는 관이 달라지기 때문이란다.
"여보! 미안하구려. 모든 것이 서툴고 미숙해서 어쩔수가 없구려. 이해하겠지?"
안식구가 오랫동안 다니고 봉사하던 봉영사에서 주지 스님은 지방에 출타 중이시라
상좌스님이 오셔서 독경 속에 염습이 시작되었다. 염이 시작되자 상주들은 마지막 고인의 모습을 보아두란다. 죽기 직전까지 그 아픈 고통을 속으로 삭이며 평상심을 잃지 않으려 애쓴 당신 모습, 지금도 이렇게 눈에 선한데..... 심하게 당신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부운 얼굴, "얼마나 죽음의 고통에 시달렸소? 여보 정말 미안하오... 정말 미안해..."
빈소에 찾아오는 당신의 친구와 친척과 이웃들을 볼 때마다 주책없이 눈물은 나고 무슨 위로의 말인들 귀에 들려오겠소. 여보 그동안 스물여섯 꽃다운 나이에 빈손뿐인 나에게 시집와 아옹다옹 다투기도 하였지만, 우리 아들 딸 3남매 모두 훌륭히 교육시켜 열심히들 살아가고 악착같이 절약하고 저축하여 이만큼 가세를 일궈 놓았는데...
당신이 작년 설날에 애들 앞에서 그랬지 '나는 참으로 행복한 여자다. 이 이상 행복할수 없다. 너희 아빠 만나고 너희들 3남매 아무 말썽없이 잘 자랐고 나는 이 행복이 죽는 날까지 이어지길 바랄 뿐' 이라고....
누가 말했듯 당신은 정말이지 내 생의 최고의 동반자 였다오!
당신이 입원하던 4월 5일은 우리결혼 35주년이었지. 매년 이맘 때면 자식들과 같이 외식을 하곤 했는데, 느닷없이 병원에 입원을 하더니 이렇게 되고 말았구려...
그리고 올 시월이면 당신 환갑이라고 나와 같이 북유럽여행 다녀오자고 준비하고 있었잖소. 그리고 지난 가을 여행에서 사파이어를 사왔지. 당신 환갑에 목걸이 만들어 주려고... 얼마나 좋아하고 고마워했는데, 그런 당신이 이렇게 불귀의 객이 되다니 너무나 분하고 원통하오.
불가에서 말하는 사랑하는 당신과의 이승에서의 인연은 여기까지인가 보오.
여보! 나와 애들 모두 당신을 많이 사랑했다오...
언젠가 당신이 말했지. '내가 이 다음 다시 태어나도 당신과 다시 결혼하겠다'고
여보 극락왕생하시고 고이 잠드소서. 영원히 사랑해요!
현재: 총동문회 고문
한성수출포장 대표
그날 처치실 안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오. 침대 위에 반듯하게 누워있는 당신의 얼굴은 너무나 많이 부어있고, 피투성이가 되어 인공호흡기가 물려져 있고 폐에 지혈이 안되어 고이는 피를 빼내느라 의사들가 간호사들은 연신 펌프질을 하고, 피를 수혈하느라 생리 식염수와 혈장 혈액은 어지럽게 뽈대에 걸쳐 있고, 사방으로 튄 피는 침대 주위를 온통 붉게 물들이고, 나는 곧 쓰러질 것 같은 몸을 침대를 잡고 간신히 서 있고 아들과 두 딸과 사위는 각오한 듯 엄마만 부르며 울부짗는데, 드디어 의사가 사망선고를 한다. '이제 최용순씨는 2009년 4월 9일 21시 41분 급성 백혈병으로 운명하셨습니다.'
향년 나이 60세, 환갑을 불과 6개월 앞두고...
언제나 나보다 건강하고 오래 살 거라며 수영이며 등산, 운동도 열심이었고, 건강검진도 해마다 빼놓지 않고 열심이었던 당신, 무엇보다 지난 3월 12일 건강검진에 아무 이상이 없었던 당신...
애들 모두 출가시키고 혼자 있으면 괜히 우울증이라도 걸릴까봐 봉사활동이며 각종모임으로 늘 하루가 바쁘던 당신이 이렇게 허무하게 가다니. 아까 12시에 점심식사도 꽤 많이 했던데...
막내딸이 해산을 하고 몸조리한다고 친정에 온지 단 하루, 발병한지 8일 병명도 모르고 입원한지 5일만에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란 희귀병으로 당신 친정 어머니 제삿날에
가다니,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이참담한 마음 무엇으로 표현하리오.
집안 선영은 있으나 지난 해부터 의정부 송산 지구 택지개발로 수용되면서 쓸 수가 없게 되었고, 처 고향 원주에 처 큰집으로 무상 양도해준 산이 있으나, 거리도 멀고
애들이 쉽게 찾아갈수 있는 곳이 아니라 망설여지고, 학교 후배친구가 양평에서 공원묘지를 운영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일단 내일 오전 중에 알아보기로 작정하였다.
영안실 사무실에선 우선 급한 대로 화장을 전재로 벽제, 성남 승화장을 알아보니 예약이 마감되었고 수원에 예약이 가능해서 수원으로 예약을 해놓았다.
아직은 젊은 60대초반이라 영정사진은 생각도 못 했는데 당장 영정사진도 확대해야 하고 영안실, 장지, 발인시간조차 결정된 것이 아무 것도 없으니...
시간도 어느새 밤 12시가 되어가고 이 늦은 시간에 일가친척 지인들에게 알릴수도 없고, 할 일은 많은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내 처지가 너무나 처량하다. 그래도 처갓집 형제들에게는 알려야 되겠다 싶어 사촌처남과 사촌언니, 사촌올케에게는 알렸다.
수화기 저쪽에서 통곡소리가 들려온다.
사망 2일째 새벽같이 큰딸을 깨워 안식구의 영정사진을 챙겨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일찍 가야할 일도 없으면서 아침 8시가 좀 넘어 이리저리 수소문하여 양평에서 납골당을 운영하는 후배친구와 통화가 되어 공원묘지를 알아주도록 부탁하였다.
요즈음 추세가 납골묘가 대세이나 사실 나나 자식들은 화장을 반대하여 매장을 원하였던 것이다. 8시 반이 조금 넘어 후배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양수리에 갑산공원 묘원이 있다며 직원이 출근길에 식장에 들러 나를 안내해 가겠다
한다. 양수리라면 우리집에서 1시간도 걸리지 않고 풍광이 수려한 북한강변으로
안식구와 자주 드라이브한 곳이라 우선 마음에 들었다.
내가 풍수를 배운 바도 없고 들은 바도 없지만, 그래도 35년간 살을 맞대고 산 내 사랑하는 안식구가 영면할 장소이니, 혹여 물은 나지 않을지, 방향은 어떤지 내가 직접 확인하여야겠다. 오전 11시가 다 되어 도착한 안내원을 따라 사위를 앞세우고 묘지에 도착하여 보니 너무도 경사가 가파르고 생각 보다는 달리 첩첩산중이라 조금은 실망스러웠지만, 지금 이 시각에 어디에 정할수 있나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래도 전망이 좋은 묘지 8부능선 양지바른 곳으로 정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오후 2시가 넘어서야 겨우 빈소도 차려지고 조문객을 맞을 준비가 완료되었다.
그러나 아직 염습이 끝나지 않았다. 원래 오전10시로 예정되었으나 묘지가 정해지지 않아 일이 이렇게 되었다. 화장이냐 매장이냐에 따라 쓰는 관이 달라지기 때문이란다.
"여보! 미안하구려. 모든 것이 서툴고 미숙해서 어쩔수가 없구려. 이해하겠지?"
안식구가 오랫동안 다니고 봉사하던 봉영사에서 주지 스님은 지방에 출타 중이시라
상좌스님이 오셔서 독경 속에 염습이 시작되었다. 염이 시작되자 상주들은 마지막 고인의 모습을 보아두란다. 죽기 직전까지 그 아픈 고통을 속으로 삭이며 평상심을 잃지 않으려 애쓴 당신 모습, 지금도 이렇게 눈에 선한데..... 심하게 당신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부운 얼굴, "얼마나 죽음의 고통에 시달렸소? 여보 정말 미안하오... 정말 미안해..."
빈소에 찾아오는 당신의 친구와 친척과 이웃들을 볼 때마다 주책없이 눈물은 나고 무슨 위로의 말인들 귀에 들려오겠소. 여보 그동안 스물여섯 꽃다운 나이에 빈손뿐인 나에게 시집와 아옹다옹 다투기도 하였지만, 우리 아들 딸 3남매 모두 훌륭히 교육시켜 열심히들 살아가고 악착같이 절약하고 저축하여 이만큼 가세를 일궈 놓았는데...
당신이 작년 설날에 애들 앞에서 그랬지 '나는 참으로 행복한 여자다. 이 이상 행복할수 없다. 너희 아빠 만나고 너희들 3남매 아무 말썽없이 잘 자랐고 나는 이 행복이 죽는 날까지 이어지길 바랄 뿐' 이라고....
누가 말했듯 당신은 정말이지 내 생의 최고의 동반자 였다오!
당신이 입원하던 4월 5일은 우리결혼 35주년이었지. 매년 이맘 때면 자식들과 같이 외식을 하곤 했는데, 느닷없이 병원에 입원을 하더니 이렇게 되고 말았구려...
그리고 올 시월이면 당신 환갑이라고 나와 같이 북유럽여행 다녀오자고 준비하고 있었잖소. 그리고 지난 가을 여행에서 사파이어를 사왔지. 당신 환갑에 목걸이 만들어 주려고... 얼마나 좋아하고 고마워했는데, 그런 당신이 이렇게 불귀의 객이 되다니 너무나 분하고 원통하오.
불가에서 말하는 사랑하는 당신과의 이승에서의 인연은 여기까지인가 보오.
여보! 나와 애들 모두 당신을 많이 사랑했다오...
언젠가 당신이 말했지. '내가 이 다음 다시 태어나도 당신과 다시 결혼하겠다'고
여보 극락왕생하시고 고이 잠드소서. 영원히 사랑해요!
현재: 총동문회 고문
한성수출포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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